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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복지뉴스 주먹의 보스에서 장애인의 대부가 된 신용식 씨(충북인뉴스)
2017-10-25 19: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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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의 보스에서 장애인의 대부가 된 신용식 씨

“내가 장애인임을 깨닫는 순간, 이게 바로 행복!”이라 느껴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주먹의 보스로 각인돼 있다. 지금도 그 계통(?)의 어지간한 이들은 그를 ‘큰 형님’이라 부른다.

사실 신용식 씨(66)는 오랫동안 충북을 상징하는 보스였다. 그것도 전국구로 말이다. 그 세계가 그렇듯 신용식 씨 역시 

불확실성의 이력을 거듭하며 생과 사를 숱하게 넘나든다. 그러면서도 20대를 시작으로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보스’의 위상을 지켜온 건 충북에서 그가 유일하다.

17년 전 그는 돌연 충북장애인 단체의 최고 책임자에 이름을 올리며 뜻밖의 변신을 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뻔한 거 아니겠어?”라고 수군거렸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곧바로 범죄단체 수괴라는 이름을 달고 

영어의 몸이 된다. 당시의 사건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그는 그 불명예를 오히려 스스로를 다잡는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를 수도없이 되뇌었다고 한다.
 

신용식 씨. / 사진=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2005년 사회로 복귀한 그가 머뭇거릴 틈도 없이 찾은 건 역시 장애인단체 활동이다. “장애인들을 규합하고 계도해서

 스스로 재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 당신이 할 일”이라는 깨우침을 준 은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원종 전 충북지사와 이정식 전 CBS 사장이다. 이들은 신체 장애를 가진 신용식 씨에게 “앞으로는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라”고

 길을 열어준, 후반기 인생의 멘토였다. 그는 스무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었다.

“이원종, 이정식 씨가 나의 멘토”

장애인단체 활동은 2009년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중앙회장을 맡으면서 예의 전국구로 넓혀졌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협회의 위상을 다져놨다. 올해 충북에서 전국장애인체전을 일반인 체전에 앞서 개최한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탄핵정국에선 태극기집회에 단골로 참여하면서도 마이크만 잡았다 하면 장애인 정책관련 발언을 

쏟아내는 바람에 SNS를 달궜다. 어느덧 그에겐 보스가 아닌 ‘장애인의 대부’라는 닉네임이 붙여졌다.

지난 18일 그는 8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중앙회장을 퇴임했다. 소감을 묻자 첫 말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같다”였다. 두가지 이유라고 했다.

“건달출신이 그런 자리를 맡는 것을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당연히 주변의 선입견이 조심스러웠고 임기 내내 이를 의식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솔직히 심적 부담이 컸어요. 또 한가지는 나를 이 길로 이끌어준 분들에게 배신감을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늘 조바심이 많았어요. 그분들한테는 끝까지 신의를 지켜야 하거든요.”

이후의 얘기는 장애인으로 시작해 장애인으로 끝났다. 그만큼 장애인단체 활동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절박하다. 

현장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는 격정과 논리는 가히 장애인정책과 장애인복지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 스스로도 “내가 장애인이다 보니까 모든 문제가 실체로 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단체 활동이나 장애인 정책은 모두가 틀렸습니다. 정부 정책도 문제고 이를 받아들이는 

장애인들도 문제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썩었어요. 정부는 국민세금으로 생색이나 내려 하고 장애인은 자신이 불구임을 내세워

 그저 생떼를 부리고 손내미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어요. 이것이 우리나라 장애인정책의 전부입니다.”

 

그가 현장에서 목격하고 고민한 건 이렇다. “정부나 지자체는 장애인문제에 대해 늘 적당주의입니다. 

긁어 부스럼만 안 만들면 그만이라는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거든요. 여기엔 장애인은 약자, 그저 도움만 주면 된다라는 

고정관념이 굳게 자리잡고 있어요. 공무원들에게 무슨 제의라도 하면 돈 얘기부터 꺼냅니다. 무조건 돈으로 지원만 한다고 해서 

장애인을 돕는 게 아니예요. 그들이 일반인들과 어울리며 똑같이 사회활동을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장애인단체에 대한 현실진단은 더 냉혹하다. “장애인은 자신이 약자라는 패배의식부터 버려야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어요. 

장애인끼리 밥그릇 다툼이 너무 지나치고 어떤 경우는 아예 피를 빨아먹고 있다고 할 정도로 속이 보입니다. 

어금니아빠 사건은 우리나라 장애인정책에 있어서의 좋은 반면교사라고 봅니다.”

신용식 씨가 요즘 동병상련의 장애인들만 만났다 하면 목소리를 높이는 말이 있다. ‘장애인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뗑깡을 부리면 법인이 하나 생긴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이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요. 

남쪽지방의 어느 도시엔 공인된 장애인단체만 70여개가 넘습니다. 장애인들이 이권 때문에 서로 다투고 분열하는 것이죠.”
 

신용식 씨. / 사진=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다툼과 생떼 사라진 이유

그는 인터뷰 도중 세 가지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첫째 장애인이 하나가 되는 것, 

둘째 도움받는 장애인단체에서 도움을 주는 장애인단체로 변화하는 것, 

셋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세금을 내는 장애인과 장애인단체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청주는 오랫동안 도시의 규모에 비해 조직폭력의 활동이 극심했다. 

그러다보니 잊을만하면 불거진 것이 조직간 세력다툼이고 불상사였다. 강력사건도 빈번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는 이 것들이 사라졌다.

또 있다. 장애인들의 실력행사 이른바 ‘무데뽀 집단행위’가 요즘엔 안 보인다. 

무슨 축제만 열렸다 하면 야시장 등을 둘러싸고 으레 불거지던 일들인데도 말이다. 

2005년은 신용식 씨가 풀려나 사회활동을 재개한 해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들이 누구 때문인지 잘 알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일이 없으면 삶도 없습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복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의 

사회활동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립을 기대할 수 있어요.”

장애인단체 활동이 자신에겐 최고의 행복임을 알게 됐다는 그가 사회활동의 마지막으로 꿈꾸는 것이 있다. 

장애인의 노후를 보살피는 것이다. 몇 년전 서울에서 고독사한 독거장애노인의 처참한 죽음을 보고 줄곧 고민해 오고 있다고 한다.

충청리뷰  043si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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