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선이 아닌 기회를.'
지난 8일 임시 개장 상태였던 서울 '굿윌스토어'(GoodWill Store) 도봉점 직원들은 모두 이런 문구가 등에 새겨진 파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가게는 1000원짜리 액자부터 1만원짜리 청바지, 20만원짜리 노트북까지 다양한 상품으로 가득했다. 모두 개인과 기업이 기증한 물건들이다. 시중에서 2300원에 팔리는 100g들이 참치캔이 이곳에선 1000원에 팔렸다. 손님들에게 물건을 파는 직원 대부분은 발음이나 행동이 조금씩 어눌했다. 이 가게의 직원 45명 중 31명은 언어나 지적장애인이다. 1256㎡(약 380평) 규모의 가게엔 "일을 통해 삶을 변화시킵니다" "물건 구매 금액이 장애인 직원의 월급이 됩니다"라는 문구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굿윌스토어는 물건을 기증받아 판매해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1902년 미국에서 처음 생겼다. 미국에선 2009년 기준으로 연 매출 37억달러(한화 3조9923억원)의 비영리 단체로 성장했다.
한국에는 시각장애인으로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고(故) 강영우 박사 소개로 2003년 부산에 1호점이 세워졌다. 현재 전국 10개 매장에서 160명의 장애인과 37명의 취약계층, 40여명의 비장애인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지난해 초 타계한 강 박사의 뒤를 이어 굿윌스토어 보급에 앞장선 것은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71) 원로 목사다. 홍 목사는 2011년 2월 '함께하는 재단'을 출범시키고, 같은 해 5월 굿윌스토어 송파점을 세웠다. 함께하는 재단은 이후 굿윌스토어 3개를 더 세웠다. 국내 굿윌스토어는 그 사이 한 해 매출 2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1호점에서는 지적장애 1급인 직원이 10년째 장기근속을 하고 있다. 오는 28일엔 10호점인 도봉점을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홍 목사는 1996년 신도 수 4000여명이었던 남서울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남서울은혜교회를 개척한 인물이다. 남서울은혜교회는 남서울중동교회와 은혜교회가 연합해 만들어진 교회다. 대부분 교회가 분리를 하는 와중에 두 교회의 '연합'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교회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예배를 했다. 홍 목사와 신도들은 이후 강남 한복판에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장애아 전문교육기관인 밀알학교를 세웠다.
홍 목사는 "우리 아이를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말에 1998년 교회 5층 한쪽에 장애인 작업장을 만들었다. 이 작업장은 2008년 강남구직업재활센터를 수탁 운영하는 등 크기를 키웠다. 하지만 장애인 직원들은 비누나 빵을 만들고 고작 5만~15만원의 월급만 받았다. 자립이 불가능한 액수였다.
홍 목사는 이곳에서 일하던 100명의 장애인 중 일부를 직원으로 뽑아 굿윌스토어 송파점을 세웠다. 물품 공급처는 이웃과 기업이었다. 이웃들에게는 "이제 쓸모가 줄어든 물품을 기증해 달라"고 홍보했고, 기업들을 찾아가서는 "재고 물품을 기증해주면 기업 입장에서는 창고 비용도 줄이고, 세제 혜택(기부)도 누릴 수 있다"고 설득해 물품을 확보했다. 소비자들에겐 "싸고 좋은 물건을 구입하면,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착한 소비"라는 점도 강조했다. 송파점은 1년 6개월 만에 하루 매출이 300만원을 넘는 곳으로 성장했다.
송파점은 이제 장애인 직원 상당수가 '최저임금'을 받는 곳이 됐다. 장애인 사업장은 현행법에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까지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장애인 일자리 확충에 또 다른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굿윌스토어는 다르다. 장애인 직원들은 처음엔 '훈련생' 신분으로 월 22만원 정도를 받지만, '정식 근로자'로 승격되면 월 75만8160원을 받는다. 송파점은 49명의 장애 직원 중 37명이 최저임금을 보장받는다. 가게의 지난해 매출이 9억원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송파점 직원 김우주(24)씨는 지적장애 1급이다. 글씨와 숫자를 읽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생애 첫 직장인 이곳에서 개점 이후 3년째 '정식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굿윌스토어가 아니었다면 집에서만 있었을 텐데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인호(52)씨는 "실수해 가게에서 야단맞으면서도 열심히 다니는 아들이 한없이 대견하다"고 말했다.